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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각도 고속 판단
더 높은 차원에서의 시각 - 입체성
의지, 목표 등 마음가짐 문제?
관심 분야가 다르다?
내게 보이는 것이 상대에게는 안 보이는 상태로 대화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뛰어난 과학자들은 단 하나의 '해답'이 아니라 복수의 '해답들'을 찾으려고 한다.
수학자들은 종이 접기가 정교한 다차원적 논리를 구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논리는 어떤 연산이나 법칙과도 같으며, 무엇을 접을 수 있고 없는지, 그리고 최종적인 모양을 만들어질 때까지의 접는 순서를 결정해주는 것이다.
한편 이것은 수학적으로 기술될 수 있고 기계조립과 관련된 경우 일련의 조작 순서로 설명될 수 있다.
그래서 종이접기는 '플라이케이션, plication'이라고 부르는 수학의 새로운 하위 분야가 되고 있다.
플라이케이션에서는 어떤 종류의 접기에도 통용될 수 있는 법칙을 찾고 있다.
접기는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실생활에서 모든 상품의 제작공정은 2차원 소재를 구부리고, 접고, 압착해서 3차원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강철 평판을 압착해서 자동차나 비행기, 기차, 캔, 가재도구들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물건들을 도안하고 설계하기 위해서는 평면적인 것이 어떻게 입체적인 것으로 변형되는지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
2D 청사진이나 설계도, 지도를 3D 현실과 결부(結付)시키는 능력이 이런 작업에 필수적이다.
설계도면을 구체화하는 일은 크기 조정(scaling)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도를 그리거나 3차원적으로 무엇인가를 제작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어떤 차원 내에서 물체의 크기나 비율을 변화시키는 일은 많은 분야에서 요구되는 기술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어떤 학자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 조정의 폭은 그의 '학문적 영역'과 정확히 일치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길이가 백만 미터가 넘는 대상을 상대하는 사람이라면 우주비행사가 틀림없을 것이다. 천 미터에서 백만 미터까지의 길이를 가진 대상을 다루는 사람은 지리학자일 것이다. 가장 큰 건축물이나 기구는 철도나 고속도로를 빼면 고작해야 천 미터 남짓하다.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들의 스케일은 1/3 미터에서 10 미터에 걸쳐져 있다. 생물학자들은 길이가 1/3 미터에서 1/10,000 미터에 걸쳐 있는 대상을 다루며,
생화학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대상의 길이는 1/10,000 미터에서 1/100,000 미터이다. 대개의 화학자들이 취급하는 연구대상의 크기는 1 나노미터에서 1 피코 미터까지다. 이보다 작은 크기는 물리학의 세계에서 취급한다.
조각을 볼 줄 모르는 형태맹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3차원 물체를 완전히 지각하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조각이나 건축물을 만드는 일은 고사하고 그것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도 없다
천체물리학자인 마거릿 겔러는 형태맹이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흔하다고 여긴다.
겔러는 20년 전까지 정설이었던, 은하들이 전 우주에 균질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주장을 완전히 뒤집었다.
그 이론의 오류는 많은 과학자들이 망원경으로 촬영한 2차원적 평면 사진에 오도(誤導)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플랫랜드(flatland) 사람들처럼 그들은 이 사진을 3차원의 정확한 실제 모습으로 재구성하는 데 실패했다.
아주 소수의 학자들만이 평면적 이미지를 3차원적인 상으로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의학분야에서는 인체모형을 활용하는 범위가 더 넓다.
수 세기 전 중국의 상류계급에서는 귀부인들이 진찰을 받으러 갈 때 옷을 입히지 않은 상아인형을 들려 보냈다.
문화적인 금기와 정숙성을 나타내기 위해 남자 의사 앞에서 절대 옷을 벗을 수 없었던 그녀들은 벌거벗은 인형을 이용하여 아픈 부위와 증상을 설명했던 것이다.
아시아의 전통의사들은 작은 인형의 몸에다 침을 놓을 자리와 기타 의료정보를 표시했다.
모형의 한계를 아는 것은 그것의 적절한 용도를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모형은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생각이나 개념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과학적 모형의 역할은 큰 건물을 짓는 건축현장에서의 비계나 크레인과 비교할 수 있다.
비계나 크레인이 없으면 건물을 지을 방도가 없다
그러나 건물이 완성되고 나면 그것들은 필요없어져 이내 해체된다.
20년간의 주요한 공학적 실패(다리, 건물, 로켓, 비행기 등)가 작업모형을 제작하는 직접 경험이 줄고, 대신에 컴퓨터 그래픽에 대한 의존도가 계속 늘어난 데서 기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를 이해하려면 모형을 만들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려면 유용하면서도 다양한 모형을 만들어봐야 한다. 그런 일을 장려하고 가르침으로써 이 일이 노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쉬운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중략)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집 뒷마당에 만들어놓은 요새가 얼마나 튼튼한가에 있지 않다.
지하실에 마련한 장난감 동물원이나 방 안에 지어놓은 인형집이 얼마나 그럴싸한가도 중요한 게 아니다.
오직 '모형을 만든다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 이 행위를 통해서 이해력과 제어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다양한 과목을 학습하는 수단으로 모형 만들기를 권장할 수 있다.
정치학이나 역사학, 인류학을 배울 때에도 각 전투과정이나 건축양식의 혁신, 전통의술의 효능,
경쟁적인 경제활동의 결과물, 종교의식의 목적 등을 물리적, 기능적, 이론적인 모형으로 만들어 배운다면 매우 효과적인 학습방법이 될 것이다.
모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위의 모든 것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가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모형 만들기'는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훌륭한 배움의 방식이 된다.
모형 만들기를 평생의 습관으로 삼는다면 살아가는 내내 배움과 재미를 동시에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영어교육론이라는 과목이었는데 교재는 물론 (영어교육학도 사이에선 악명은 PLLT,
즉 Principles of Language Learning and Teaching) 원서였다.
내가 이책을 공부하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은 "불변의 진리는 없다"를 깨닫게 된 것이었다.
우리가 읽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은 누군가의 해석을 거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정보의 가변성과 주관성을 경계하게 되었다.
남들은 로스쿨 공부가 힘들다, 혹은 법 공부가 지겹다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매일매일 새로운 법과 그 법이 내재하고 있는 논리와 합리성을 공부하며, 그것이 실체화된 법조문을 보면서 나는 감탄한다.
법조문들은 합리성과 이성을 추구하는 수많은 법률가들의 노력의 산물
같은 글을 읽고, 같은 사실관계를 접하더라도 법조인들은 일반인들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그들이 보지 못하는 볼 수 있도록 훈련 받는다.
왜냐면 그것이 법률가들이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
다보면 자연적으로 법조인들은 냉소적이고 비판적이 되어야 한다. 남들이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어떻게든 거기에 수반되는 위험과 숨겨진 메세지를 밝혀내려고 노력한다.
남들이 보기엔 세상을 참 피곤하고 까칠하게 사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쩌면 이 길을 택한 사람들의 하나의 숙명이고, 동시에 특권이 아닐까.
貧富之道 莫之奪予 ( 빈부지도 막지탈여 )
"가난하게 사는것은 누가 자기 것을 빼앗아가서 내가 가난한것이라고 알고 있다거나,
내가 부자로 사는것은 누가 내게 주어서 부자가 된 것이라고 안다면 그것은 착각이자 미혹입니다"
而巧者有餘 拙者不足 (이교자유여 졸자부족)
"그리고 세상의 이치에 맞고 교묘하게 행동하면 부유하게 살것이고,
(교묘하다는 말은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정밀하고 세밀하고 꼼꼼하게 베틀이 날줄과 씨줄이 딱 들어맞듯이 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잘 몰라 제멋대로 살거나 졸렬하게 자기 입장대로 세상의 이치를 알면 부족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