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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순교자
과학사를 보면 어떤 이론이 꽤 오랫동안 정설로 자리잡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1) 이론 자체가 참이므로 부동의 이론이 되는 경우.
2) 참은 아니지만 워낙 저명한 사람이 제창한 것이어서 감히 그 권위에 맞서 부정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
갈레노스 - 후자의 경우로, 검투사들의 팀닥터, 황제 주치의 등 일했다.
저술한 갈레노스 전집 -천 페이지짜리 책 22권 - 해부학에 관한 모든 것이 적혔다고 인식됨.
문제는 고대의 책이 16세기까지도 1400년이 넘도록 의사들의 교과서로 인정받았다는 점
실체 경험이 아닌 고대의 책을 교과서로 삼아 환자의 병을 진단
이걸 깨뜨린 사람이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29살 때 집필
기존의 오류들을 지적 - 개, 고양이, 돼지, 원숭이들을 해부한 결과를 사람에 적용했던 갈레노스의 책 최소한 200개 이상의 오류를 찾음
예시 - 기존의 책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치아 수가 다르다고 했는데 직접 세어보기만 해도 반박됨
조르다노 브루노
지동설 지지, 결국 화형당함
당시,마녀 피의자로 체포되면 자백할 때까지 고문하고 다른 동료의 이름을 부르게 만들었다
신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악마가 있어야 하는데 그 증거가 마녀였다.
자백을 했다는 것은 곧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공고히 해준다는 것
2세기에 활동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무려 1500년 동안 천문학계에서 부동의 권위를 누렸다.
프톨레마이오스의 해석은 실제 관측 결과와 잘 들어맞았다. 즉 천체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은 두 가지의 결점을 갖고 있었다.
1) 지구를 행성계의 중심에 두었다는 점.
2) 천문학의 물리학적 측면과 수학적 측면을 분리했다는 점.
이러한 결점들은 코페르니쿠스(1473~1543)와 케플러(1571~1630)의 등장으로 대대적인 수정을 받게 된다.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출간 당시 인쇄감독을 맡았던 성직자 안드레아 오시안더는 입장이 두려워 서문에 가필을 했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새로운 주장은 반드시 사실은 아니며, 미래의 천체 위치를 예측하기 위한 단순한 수학적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1616년까지 금서목록에 등재되지 않은 것도 오시안더의 가필 덕분이었다.
중세 서유럽을 지배하던 교회로서는 천동설과 지동설의 차이는 심각한 것이었다.
더구나 지구가 멀리 떨어져 있는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면 우주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가치가 강등되는 것이다.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지동설은 그야말로 불경하기 짝이 없는 논리였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은 성경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교회는 이런 불경한 생각을 차단시켜야 했고, 그러자면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는 무한히 많은 항성이 있고, 그 주변에서 자기 나름의 규칙대로 움직이는 다른 행성들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틀림없다는 놀라운 주장을 했다.
베네치아의 귀족 모체니고는 부르노에게 씌워졌던 이단이라는 죄목은 자신이 중재할 수 있으므로 귀국하라고 그를 안심시켰다.
1591년 부르노가 베네치아로 돌아가자 모체니고는 그를 이단자로 고발했다. 곧바로 투옥되었고, 그의 종교재판은 7년이나 소요되었다.
그는 우주의 생명 그 자체가 신에 의해 만들어진 능산적 자연이라고 보았으므로 이단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범신론적 주장이었다.
내세를 바라보고 사는 세속에서의 금욕적 도덕은 위선에 불과하며, 현세의 사회적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이 선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선은 우주적 생명과의 신비적 합일에 있다고 보았다.
부르노가 계속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자, 교황 클레멘스8세는 그를 철저한 이단자로 낙인 찍었다.
1600년 그에 대한 마지막 종교재판이 열렸고, 화형이 언도되었다. 그는 산 채로 불에 태워졌다. 이단자의 책과 원고와 함께.
화형은 당시의 기본 수순이었다. 70년 전 코페르니쿠스가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믿으면서도 책을 발간하지 않으려고 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부르노는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화형을 당했지만 그는 코페르니쿠스처럼 지동설을 맨 먼저 주창한 사람도 아니고 지동설에 관여한 사람도 아니다.
아리우스파의 종교적인 믿음을 견지하기 위해 화형을 당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과학계의 가장 유명한 순교자 중 한 명으로 기록된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지동설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선고를 받고 있는 나보다도 나에게 선고를 내린 당신이 진리 앞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3. 지식은 힘이 세다. -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고전 경험론의 창시자.엄밀한 의미에서 베이컨은 전문 과학자도 아니고 뚜렷한 과학적 업적을 남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과학적 방법론을 체계화하여 새로운 과학의 길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베이컨이 가장 중요시한 개념은 지식의 토대이다.
따라서 개념이 우연히 찾아진 것이라면 이와 같은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은 절대 견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어떤 개념을 확실히 얻기 위해서는 경험에 기초해야 하지만 맹목적으로 사물을 모으는 경험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이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선입관과 편견을 들었는데, 이를 네 가지 우상으로 정리했다.
종족의 우상(인간에 공통된 편견), 동굴의 우상(개인의 편견), 시장의 우상(언어사용에 근거한 폐단), 극장의 우상(사상의 편견)이 그것이다.
베이컨은 당시에 유행했던 연금술의 실체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연금술이 과학의 역사에서 담당한 역할을 부산물의 개념으로 잘 설명했다.
"농부가 아들들에게 자신의 과수원 어딘가에 금을 묻어 두었다는 유언을 했다. 아들들은 포도밭을 정신없이 파헤쳤지만 금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가을의 포도수확은 매우 풍성했다."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기반으로 한 이런 지적은 당대의 연금술적 자연관으로부터 탈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당대의 주류라고도 볼 수 있는 미신적 마술로부터 자연적 마술이라고 설명되는 기계공학적인 기술로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이 말은 근대과학이 갖는 근본적인 의미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는 인간의 능력이 지식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학문의 목적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 증대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베이컨이 말하는 지식의 힘은 학자들의 자기만족이 아니라, 지식을 활용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의 시도는 과학의 기본 해법인 수학적 결합이 결여되어 있어 생각의 의도 단계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연구방법론은 이후 폭발적인 발명과 발견을 통해, 인류를 보다 편하게 하는 과학기술의 세계로 인도하는 계기가 된다.
베이컨의 지식체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과학은 반드시 사실을 제공해준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가 추론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과학자들은 경험을 따라야 한다." - 로버트 보일.(1627~1691).
베이컨은 지식의 습득을 위한 도구가 사람들에게 이미 주어졌다고 믿었다. 바로 이성과 실험이다.
그는 온도와 부패에 관한 연구를 하다가 차가운 날씨로 인해 폐렴에 걸려 죽었다.
4. 연금술에서 화학을 발견하다. -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Juhann Friedrich Bottger 1682~1719).
1세기부터 16세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연금술사가 그 지위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1) 그럴싸한 방법을 동원해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고,
2) 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합금을 만드는 것이었다.
연금술사들이 사람들을 속이는 방법에는 도가니 바닥을 이중으로 만든 다음 그 사이에 금을 숨겨 두는 방법이 가장 많이 쓰였다.
속이 빈 막대기 속에 금을 넣고 그 끝을 밀랍으로 막으면 막대기로 용액을 저을 때 밀랍이 녹으면서 금이 흘러 나오도록 하는 방법도 있었다.
최후의 순간에 그들에게 남은 것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순금을 만드는 작업을 질질 끌다가 결정적 순간에 줄행랑치는 것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연금술사들이 순수한 금을 만드는 데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원자의 분해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상태에서 비금속을 금으로 만들려는 연금술사들은 결국 과학기술 정보 부족과 무지에 의해 과장과 실패로 점철되었고, 그에 따른 피해와 부작용이 겹쳐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피해는 수은 중독이었다.
많은 연금술사들은 수천 번에 걸쳐 액체를 끓이고 증류하고 침전하는 모든 과정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바로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기도 하고 직접 만들어 내기도 했다.
작센 궁정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금을 만들어 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뵈트거에게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다.
머리회전이 빠른 드레스덴의 한 귀족이 뵈트거의 재능을 알아보고 황금 대신 그에 버금가는 것을 보여 주면 된다고 귀띔했다.
중국의 도자기와 같은 도자기를 만들 수만 있다면 금을 만들지 않아도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기꾼이라는 오명과 죽음의 궁지에서 벗어날 기회를 만나자 뵈트거는 곧 재능을 발휘했다.
1709년 뵈트거는 왕에게 양질의 자기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왕에게 보고했다. 그의 나이 27세 때의 일이다.
이것이 지금도 도자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마이센 도자기의 탄생이다.
그러나 뵈트거가 성공을 만끽할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5년 후에 그는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
5. 번개 실험에 산 제물이 되다. - 게오르그 빌헬름 리히만(Georg Wilhelm Richmann 1711~1753).
과학자들이 자연을 연구하면서 위험이 없는 현상들로만 연구대상을 한정할 수는 없다.
지진,방사능,독충,독버섯 등에 대해 후대 사람들이 파악하게 된 경위는,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에 의해 정보가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남이 경험하지 않은 분야를 다루다 보니 자연히 위험에 노출되게 마련이다.
벤자민 프랭클린
실험에 그치지 않고 실험에서 얻은 지식을 실용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신은 인간에 대한 자비심으로 사람들의 집이나 다른 건물들을 벼락의 재해에서 구할 방법을 알려 주셨다..."
그런데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가 걸림돌이 되었다. 기독교도들은 번개가 하늘의 응징이므로 이에 거역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번개는 악마가 신에 반항할 때 일어나므로 이를 방어하는 유일하고 올바른 방법은 천둥번개가 칠 때 교회의 종을 울리면 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대부분 높은 곳에 위치한 교회의 종탑은 번개에 매우 취약해서 번개가 칠 때 종을 울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피뢰침의 효과를 알고 있었음에도 교회는 오랫동안 종을 울렸는데, 18세기 말 독일에서만 번개가 칠 때 종을 쳐야 한다는 관례로 120명의 종지기가 죽었고 400개의 종탑이 파괴되었을 정도다.
10. 기존 이론은 쓰레기통 속으로 -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Lavoisier 1743~1794). 근대 화학의 아버지. 길로틴으로 처형.당시의 화학은 어떤 체계도 없이 무작위적으로 필요에 의해 실험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혼돈의 시기에 화학적 합성과 반응의 논리를 강조함으로써 화학을 과학으로 새롭게 방향 제시를 한 인물이다.
라부아지에에 의해 비로소 그리스 시대부터 사람들이 믿어 왔던 4원소설을 타파할 수 있었다.
그는 공기의 20%가 산소로 구성되어 있고, 연소란 가연성 물질과 산소가 결합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임을 밝혀 냈다.
라부아지에는 1779년 그 물질에 산소(Oxygen)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모든 산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그리스어로 산의 구성자(Acid Former)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었다.
그는 연소나 호흡 사이에 여러 가지 유사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12. 통찰과 데이터로 진실을 밝힌다. - 이그나즈 필립 젬멜바이스(Ignaz Philipp Semmelweis 1818~1865). 소독의 창시자. 정신병원에 수감 중 사망.
수술실은 철저한 위생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의사들에게 위생관념이 도입된 것은 150년도 채 되지 않았다.
1847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일하던 헝가리 의사 젬멜바이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발견했다.
의사가 환자를 살리는 구원자가 아니라 오히려 환자를 병들게 하는 파괴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17. 과학자, 얼음 속에 잠들다. - 알프레드 베게너(Alfred Lothar Wegner 1880~1930). 대륙이동설 주창자. 탐험 연구 중 실종.
학자들로부터 당대에 가장 크게 외면당했던 이론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알프레드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이다.1915년 베게너는 자신의 이론을 <대륙과 대양의 기원>이란 책으로 발표했다.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로 번역되자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 내용이 진실이든 아니든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약 3억 년 전 판게아라고 하는 거대한 하나의 대륙이 당시에 어떤 모양으로 붙어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대륙이동설로부터 출발한 해저확장설은 판구조론이라는 새로운 지구과학 이끌어 낸다.
폴란드에서 열린 이번 학회에서는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소. 정말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단 말이오.
그들의 소위 연구라는 것이란 항상,
1)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거나,
2) 의미가 분명치 않고 애매모호한 것이거나,
3) 분명하고 자명한 사실이지만 괜히 길고 어려운 방법으로 풀어서 마치 중요한 발견이나 한 것처럼 발표한다거나,
4) 수 년 동안 인정되고 확인되어 정설로 되다시피 한 사실들을 자신의 엉뚱한 생각에 근거해서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거나, → 이것이 최악의 경우요. 바보를 납득시킬 방법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오.
5) 아마도 불가능하며 쓸모가 없는 것이 분명하고 결국에 가서는 실패로 끝나게 될 일을 하려고 시도하는 것이거나,
6) 또는 잘못된 것을 옳다고 주장하는 따위요. - 1963년.
‘가격은 없다’는 ‘비교’와 ‘앵커링’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경제학, 인지심리학 연구들을 통해 가격이 지극히 상대적이며 가변적임을 역설한다.
제시 헬름즈는 회사 입사 거부편지를 받은 백인에 대한 내용의 광고 하나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코멘트는 이렇다. "당신은 그 회사에 꼭 취업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단지 소수인종 쿼터 때문에 그들에게 자리를 넘겨주어야만 했습니다. 이런게 정말 공정한 일입니까?" 이후 제시 헬름즈는 백인 지역의 몰표 덕분에 상원의원에 재선되었다.
1990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걸프전에 군대 파병하는 결정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매스 미디어는 파병을 옹호하는 뉴스를 내보냈고, 당시 뉴스를 많이 보지 않는 미국인들은 23%만이 파병을 지지했지만, 습관적으로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76%가 이라크 공격에 찬성했다.
이것은 즉, 매스 미디어가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신념과 견해에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사람들로 하여금 광고 상표의 제품 구매와 인간 살상을 지지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과가 시사하는 점은 분명했다.
4가지 설득 전략
상황을 장악하고 설득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청중이 대화자에 대해 호의적인 이미지를 갖도록 만든다. 대화자는 호감, 권위, 신뢰 등 쉽게 설득시킬 속성을 보여주어야한다.
대화자가 원하는 것에 표적 청중이 주의를 기울이고 사고의 초점을 정확히 맞출 수 있도록 메세지를 구성하고 전달한다. 마지막은 표적 청중에게 감정을 이용하여 원하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두 저자가 함께 50년 이상의 설득 기법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책의 목적은 일상 생활에서 미치는 설득과 프로파간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설득의 기술을 슬기롭게 이해하는데 있다.
성공한 창업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단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 창업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역량을 발휘해 기존 경쟁사들이 취급 또는 접근하지 않는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여 사업화에 성공한 경우가 매우 많다는 점이다.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버리는 안목’이 뛰어난 창업자의 전략적 마인드이다. ‘버리는 안목’은 다양한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안목은 틈새시장 전략을 통해 나타난다.
그렇다면 기존의 기업들은 파괴적 혁신에 능숙하지 못하고 왜 실패하는 걸까? 이는 바로 ‘최고의 수익을 가져다 주는 고객에게 서비스하고 가장 매력적인 수익을 내는 곳에 투자를 집중해야 하는 것이 좋은 기업이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미 기업이 ‘스스로 판단하는’ 최고의 수익을 가져다 주는 고객, 매력적인 수익을 내는 곳을 정해버렸기 때문에 파괴적 혁신이 가능한 새로운 시장을 보기 어렵다. 이로 인해 기존 산업 리더들은 지속적인 혁신을 해야만 하고 파괴적인 기술이 그들을 묻어버리도록 자신을 방치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높은 기술력이 아니어도 되면서, 저렴하고, 잠재 시장에서 열광하는 제품을 발견하여 사업화할 수 있을까”
기존에 구축된 시장에 대한 검증 테스트를 진행할 때, 핵심 타겟이 될 고객군을 선정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개발 제품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 프로세스는 파괴적 혁신을 이루기 어렵다.
우리의 잠재 고객이 기존 시장의 핵심 고객이었던 그들이라는 가설을 가지고 테스트를 수행하기 때문에 그 외 고객인 잠재 고객군에 대한 개발 제품의 수용성을 측정하기 어려우며, 기존 고객의 경우, 이미 기존에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하이 퀄리티의 제품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능으로 구성된 저렴한 제품에 대한 니즈보단 더 좋은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검증을 진행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실패에 대한 원인은 매우 명확하였다. “어떤 주부가 조사원 앞에서 섹스, 스캔들, 루머가 많은 잡지를 원한다고 얘기할 것인가?”였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고객은 비의도적으로 거짓을 응답할 때가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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